[기타] 남대문시장 [ 南大門市場 ]
by 최고관리자 | 12.10.09 08:41 | 5,885 hit


남문안장 또는 신창(新倉)안장이라고도 불렸다. 개설권(開設圈) 주변상가까지 포함해 대지면적 4만 2225㎡, 연건평 9만 7194㎡에 총 58개동, 9,265개의 점포가 있다. 하루 이용객은 평균 45~50만 명에 이른다.

그 기원은 1414년(태종 14) 정부임대전(政府賃貸廛)으로 개시되었는데, 1608년(선조 41) 대동미(大同米)·포(布)·전(錢)의 출납을 맡아보기 위해 선혜청(宣惠廳)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됨에 따라 지방의 특산물 등을 매매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데서 유래한다. 이후 시전(市廛)이 들어서게 되면서 본격적인 상업활동이 시작되었다. 1911년 3월 친일 이완용내각의 내부대신(內部大臣)이었던 송병준이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정식으로 개시되었다.

당시 거래물품은 미곡·어류·잡화·과실 등이었고, 곡물류가 주상품이었다. 남대문시장에 점포를 내고 있던 상인은 미곡상 36개, 어물상 22개, 과물상 43개, 잡화상 19개, 기타 30개 등으로 총150개 점포였다. 1922년 경영권이 일본인 소유의 중앙물산주식회사로 넘어갔으며, 중앙물산주식회사는 공인자본금이 90만 원, 불입자본금 22만 5200원이었다. 1936년 3월 남대문시장이라는 명칭도 말소하고 중앙물산시장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한편 일본인들은 한국인 점포를 염천교쪽으로 쫓아버려 몇몇 한국인 점포만 존재하다가 8 ·15광복을 맞았다. 8 ·15광복 이후에는 남대문상인연합회가 관리 ·운영하였으나 6 ·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서울 수복 이후에는 주로 이북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았고, 미군의 군용 원조물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으며, 그 당시의 건물은 노점의 형태였다.
1954년 2월 3일 남대문주식회사가 설립되었으나, 1957년 재정난으로 해산, 다시 남대문상인연합번영회가 시장관리를 시작하였다. 1958년 대지 약 1만 2000평, 건평 약 2,000평 규모의 건물이 세워졌다. 1963년 건물주·지주·상인들이 공동출자한 남대문시장주식회사가 다시 발족되었고, 1968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시장의 중심부가 전소되었으며, 1975년에도 화재가 발생하여 시장 일부를 태웠다. 이를 계기로 지하 3층 지상 25층의 남대문시장 현대화계획을 세웠다.
현재에는 각종 의류를 비롯하여 섬유제품·주방용품·가전제품·민예품·토산품·농수산물·각종 식품·일용잡화 및 수입상품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그 중 주요품목은 상권이 전국에 퍼져 있는 의류이다. 특히 각종 숙녀의류가 가장 많이 취급되는데, 고객은 국내 소매상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아메리카는 물론 유럽에까지 퍼져 있다. 또한 아동복은 전국 아동복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각 점포는 소규모이지만 각각 상품을 직접 생산·판매하는 독립적인 기업체로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통비용만큼 가격이 저렴하며, 또한 도매와 소매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에서 모이는 중간도매상 및 소매상뿐만 아니라 일반 이용객도 이용할 수 있다.
 
[출처] 남대문시장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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